2009년 5월 24일 일요일

벨라 바이스마르(Bela Weissmahr)의 변명에 대하여

벨라 바이스마르 교수는 말하기를 '모든 상대주의자는 암묵리에 절대적으로 타당한 언명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이 전제 아래서만, 그는 상대주의를 참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전제 아래서만 절대적으로 타당한 인간인식이 있다는 견해를환상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또한 이러한 전재 아래서만 그는 논증할 수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것은 상대적 보편이라는 개념은 상대적 판단과 그것의 여지라는 측면에서라도 개연의 실재성으로써 자존의 절대라는 개념에 대하여서 열어놓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말하게 되어지는 것은 주의 복음은 핑계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하심의 의미가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벨라 바이스마르는 이러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주의자가 자신의 입장을 철저히 지킬 때 그는 이 모든 것을 체념할 수가 없다. 나아가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인식이 사실상 상대적일뿐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인식의 상대성을 결코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체념할 수없다는 개념에서 그러한 판단의 당위성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자의적인 당위성 주관적 당위성이라고 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자존의 절대 정당함에 비교되어질 수 있는 자체적 정당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합리성의 전환이라고 함의 정체성에 실제의식을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에서 읽게 되어지는 사실과 실제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주관에서 객관이라는 정적인 동의성을 말하는 것일뿐 자체적 정당함을 부여하는 자존의 절대자의 정당함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트겐슈타인의 명제에서도 인정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즉 벨라 바이스마르의 변명이라고 함은 합리성은 있지만 그 합리성 자체의 정당함이 실제가 되어지지 않는 가운데서 합리성 존재의 기각을 의미한다 특히 자존의 절대자가 부여하는 정당함을 찾게 되어지는 증거에 상대적인 다른 발상을 실제의식을 가지지 못한체 말한다는 것은 성립되어지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벨라 바이스마르의 글 인용

“그러나 동시에 적어도 극단적인 형태의 상대주의는 중대한 오류라는 것을 확정해 두어야겠다. 그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명은, 상대주의는 사람들이 그의 원리를 그것 자신에게 적용시킬 때 스스로를 지양한다는 것이다.

모든 상대주의자는 암묵리에 절대적으로 타당한 언명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이 전제 아래서만, 그는 상대주의를 참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전제 아래서만 절대적으로 타당한 인간인식이 있다는 견해를 환상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또한 이러한 전재 아래서만 그는 논증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주의자가 자신의 입장을 철저히 지킬 때 그는 이 모든 것을 체념할 수가 없다. 나아가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인식이 사실상 상대적일뿐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인식의 상대성을 결코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적인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더 이상 상대적일 수 없는 한 입장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 이 절대적 관점이 명백히, 즉 그러한 것으로써 또한 의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않는다.)”(B. 바이스 마르(Bela Weissmahr), 철학적 신론(Philosophische Gotteslehre) 허재윤 옮김 서광사 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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