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4일 일요일

게할더스보스의 증거.. 셈의 하나님

게할더스 보스의 입장 각주1)에서 읽게 되어지는 것은 셈의 장막에 야벳이 거하게 되어지는데 이것은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는 그분이 셈의 하나님이 기꺼이 되셨도다 라는 말씀을 의지해서 언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의 실재론적 기반을 이룬다고 함을 마음에 두게 된다. 셈의 하나님 셈이라는 것은 이름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과 그 실제론적 기반이 기독교 실재론의 모체임을 말씀하시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자존의 하나님과 그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그러한 자의 모습으로서의 정체성과 실재를 찾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단단체인 '여호와의 증인'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진정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였다고 한다면 그 상대적 비합리성이라고 하는 개념에서의 실제를 찾는 가운데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죄악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되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적 기반에서의 정당함을 찾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기꺼이 되어주심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바로 그러한 중심으로 믿는 가운데서 진정한 신앙의 모습으로 설 수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셈의 장막에 거하는 야벳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적 증거라는 것이 온전히 증거되어지는 가운데서의 모든 개혁교회와 복음주의적인 교회의 진정한 연합이 있게 되어질 것과 보편교회의 교제와 연합의 실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게할더스 보스의 본문을 통한 증거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와 실재를 나타내고 있다.

각주1) 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이승구역 기독교문서선교회 pp. 84-85

게할더스 보스의 입장

“둘째 예언은 셈과 관계되어 있다. 여기서 여호와라는 명칭의 사용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이 이름은 그 자체로서 벌써 셈에게 축복의 부여가 되는 것이다. 구속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능력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이 특정한 족속의 종교적인 소유와 기쁨이 되어주신다는 뜻이 깔려있다. 이는 셈족이 여호와를 경배하리라는 것 이상의 언약 형식이다. 그리고 이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인류의 어느 특정한 그룹의 하나님으로 불리운 최초의 것이다. 이는 그 족장이(이는 노아를 말함 역자주) 다음과 같은 송영을 말하게 될 정도의 경이적인 일이다. -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문자적으로 옮기면 이것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는 그분이 셈의 하나님이 (기꺼이) 되셨도다”이다.

중략

그리고 야벳이 셈의 영토를 침범한다는 것을 셈과 야벳의 영적인 동거를 말하는 듯이 풍유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 실제적인 정치적 정복이 의도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러한 물리적 정복이 야벳에게 종교적인 축복을 결과로 가져다 주게 될 것이다. 셈의 장막을 취함으로 거기서 구속과 계시의 하나님 되시는 셈의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다. 이 예언은 그 일차적인 정치적인 정복에 있어서도, 그 결과적인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그리이스와 로마인들이 셈의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런 정복은 참 종교가 세상에 편만케되는 일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델리취는 인상깊게 말하기를, “우리 모두는 셈의 장막에 거하는 야벳족속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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